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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예산안 두고 이중성 보이는 자유한국당, 왜 그럴까

AKA.DM 2019. 12. 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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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회에서 2020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자 자유한국당 의원이 손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2019.12.10 ⓒ정의철 기자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10일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국회의원들은 일제히 "지역 핵심사업 예산 대거 확보!" 같은 홍보성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여야를 불문했고 선수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지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돌리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며, SNS에도 자랑 글을 올렸습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만큼, 지역구 예산 확보는 국회의원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수 과제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분위기는 다릅니다. 자유한국당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두고 "날치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밀실예산", "밀봉예산"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자당을 뺀 나머지 여야 정당이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구성해 합의하고 처리한 예산안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4+1 협의체'를 "세금 도둑", "불법 예산 탈취기구"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4+1 협의체'는 자유한국당이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며 시간을 끌다가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을 놓치자 나머지 정당이 구성한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입장문을 통해 "정권의 시녀가 된 여당과 이중대 삼중대들의 야합으로 날치기 통과된 예산안은 위헌이며 원천 무효"라며 "513조가 넘는 예산안에서 무엇이 증액되고 무엇이 감액됐는지 그들끼리 어떻게 나눠 먹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유한국당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무려 108명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모두 지역구 주민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신임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2019.12.10 ⓒ정의철 기

'투쟁 선봉' 김재원도 지역구 예산 대폭 늘렸다

하지만 진실은 금세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서입니다.

 

자유한국당 장석춘(경북 구미을) 의원은 예산안 통과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미에 295억원 로봇인력 양성기관 유치된다'며 내년도 예산 15억5천만원을 확보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게시했다가 구설에 올랐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일제히 "예산안 날치기"라며 본회의장에서 고성으로 항의하고 있는데, '눈치 없이' 예산 확보를 대놓고 자랑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이튿날 유감을 표했습니다.

 

장 의원처럼 대놓고 홍보를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4+1 협의체' 구성 전에 예산 심사에 직접 참여했던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지역구 예산을 두둑이 챙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국회 예결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관련 예산을 정부안에 비해 무려 100억원 넘게 늘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중 심사 과정에서 신설된 예산만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로 인해 자유한국당이 표면적으로는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4+1 예산안'을 끝까지 막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본회의 전부터 나오고 있었습니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최근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국회의원들은 내년 4월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를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영혼을 판다"며 "자유한국당은 지역구에서 '예산 따 오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 이런 항의를 받을 수 있으니 국회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심사한 수정 예산안이 자유한국당의 방해로 올해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자동 상정된 기존 정부안이 처리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정부안에 관련 지역구 예산이 포함되지 않은 자유한국당 의원들만 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자유한국당의 무리한 요구와 겁박에 물러서지 않고 예산안 처리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패스트트랙 철회 등을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2019.12.11. ⓒ뉴시스

극한 대치는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펼쳐진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의 대여투쟁은 예산안 처리 후 점점 더 강경해지는 모양새입니다.

 

지역구 예산을 두둑이 챙긴 김재원 의원도 당 정책위의장으로서 '투쟁의 선봉'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자당을 뺀 '4+1 협의체' 예산안 처리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강제로 동원된 것은 문제라면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엄포하기도 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헌정사상 있을 수 없고, 절대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의회주의가 파괴됐고 법치가 무너졌다. 국민 세금은 도둑질당했다"며 급기야 본회의장 앞에 농성장을 차렸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관리해 분주할 수밖에 없는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덩달아 농성에 결합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이 대여공세에 고삐를 죄고 있는 데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문제는 예산안이 아니라 선거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제 자유한국당이 막으려는 것은 예산안이 아니라 선거법 개정안이라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4월 선거법 개정안이 검찰개혁 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육탄전까지 벌였습니다. 최근 황교안 대표는 청와대 앞에서 8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현행 선거법이 자당 입장에선 의석수를 더 많이 차지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에 속한 정당들은 내년도 예산안을 합심해 처리한 데 이어 오는 17일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합의안 도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것을 막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이 되는 것 자체를 막기 위해, 함께 상정되는 수백 개의 다른 법안들에 대해 모조리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등의 '회의 지연 작전'도 펼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면서도 끝끝내 예산안 처리에 다른 정당과 합의하지 않았던 것도 이와 연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나경원 원내대표에서 심재철 원내대표로 원내사령탑을 바꾼 뒤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겠다는 전제조건으로 '예산안 합의 처리'를 내세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한국당은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지 않았으니 → 필리버스터도 철회할 수 없고 →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임시국회를 앞두고 황 대표는 다시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는 "이제 저들은 선거법과 공수처법마저 며칠 안으로 날치기 강행 처리하려 할 것"이라며 "가짜 검찰개혁과 가짜 정치개혁을 주고받는 대국민 사기극을 자행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어 "좌파독재의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다"며 "저와 우리 당은 결사항전의 각오로 맞서 싸워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내년 4월 총선에서 '금배지' 지키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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