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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윤중천 ‘별장 성범죄 무죄’ 준 법원의 이상한 양형 이유

AKA.DM 2019. 11. 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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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58) 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9.05.22 ⓒ김철수 기자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별장 성폭력’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준 법원이 윤 씨의 인생 궤적을 읊으며 ‘가해자 중심적’ 양형 이유를 밝혀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는 지난 15일 윤 씨의 강간치상·특수강간 등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공고 기각 등 판결을 내렸다. 다만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알선수재 등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14억 8천여만 원 추징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윤 씨에게 선고할 형벌을 정하는 데 있어 이 사건 핵심인 각종 성범죄 의혹은 직접적인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전체적인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심리를 통해 파악한 파편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형을 정하는 데 있어 필요한 내용이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감안해줬으면 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재판부는 “윤 씨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복무를 마친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거주하던 집을 개축해 빌라로 분양하는 사업을 벌여 나름의 성과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때 윤 씨는 건축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자금과 분양까지 드는 시간 부담 등을 금융기관 대출 등으로 메울 수 있고, 그 대출은 개발사업 인허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그의 인생 경로를 되짚었다.

 

이어 “윤 씨는 인허가 개발사업의 진입장벽을 넘으면 건설 규모에 따라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으며 장벽 넘는 꿈을 꿨다. 장벽을 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건축과 관련된 비전을 제시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나 윤 씨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친분, 인맥, 압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재력가 등에게 접대하는 데 골몰했다”라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뉴시스

재판부는 “윤 씨는 화려한 시설과 멋진 조명을 갖춘 원주 별장을 꾸미고 파티를 열었다. 외제 고급차를 타고 골프를 치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구분하지 않고 은밀한 친밀함을 얻고자 성을 접대의 수단으로 활용했다”라며 ‘성 접대’라는 가해자 시각을 그대로 따랐다.

 

이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보다 장벽을 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자 윤 씨는 장벽을 넘은 것처럼 꾸미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윤 씨가) ‘법조인 등을 아니까, 해병대 인맥이 탄탄하니까, 나에게 돈을 조금만 주면, 주식지분을 주면, 내가 훨씬 많은 것을 주겠다’라고 했다”라고 사기 혐의에 대해 말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느낀 감정을 ‘배신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윤 씨에게 장벽 너머의 돈이 전부였기 때문에 성 접대를 위해 이용된 여성들을 거래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피고인은 스스로 신의 깊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허세에 속고 거래 대상이 된 사람들은 그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양형이유는 ‘가해자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윤 씨 삶의 궤적을 쫓아 범행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짚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본 것이다. 윤 씨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변명을 한 셈이다. 엄정한 형식과 표현을 지켜야 하는 판결문에서 양형 이유는 판사가 일정 부분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 재판부의 가해자 중심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이날 윤 씨에 대한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재판부가) 가해자에 빙의한 듯 말을 했다”라며 “성범죄 피해자를 겪은 여성들이 눈앞에 둔 장벽은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 (피해자는) 가해자끼리의 연대, 경찰·검찰·법원의 연대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 등 장벽을 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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