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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마케팅 전략

AKA.DM 2019. 12. 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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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는데 노벨멍청상 같은 게 있다면 올해 수상자는 단연 자유한국당이다. 삭발-단식-필리버스터 같은 훌륭한 투쟁 수단을 3연속 콤보로 말아먹기가 쉬운 일인가?

 

삭발은 탈모 논란으로 말아먹지, 단식은 황제단식과 갑질단식 논란으로 말아먹지, 게다가 필리버스터는 웃긴 마케팅 전략으로 말아먹지,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망하려고 작정한 정당이 아니고서야!

 

최근 10년 사이 경영학 마케팅 분야에서 떠오른 중요한 화두는 ‘진정성’이다. 제임스 길모어(James H. Gilmore)와 조지프 파인 2세(Joseph Pine II) 등 두 경영학자가 『진정성의 힘: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책을 출간한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진정성 마케팅은 “더 이상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소비하지 않는다. 진정성을 소비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광고가 소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아무리 광고를 그럴싸하게 해도 사람들은 5분 만에 그 제품의 진짜 품질을 파악한다. 과장광고로 소비자를 속이고 등쳐먹는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본회의 법안 심사를 막아 선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그래서 길모어는 말한다. “소비자는 고품질과 적정한 가격,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넘어 진짜 음식을 먹고, 진짜 이웃을 만나며, 진짜 차를 타고, 진짜 장소에 가서, 진짜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라고 말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 정치적 기술은 단연 진정성이다. “나를 뽑으면 지역개발 왕창 해 줄게요”라는 허위 공약은 유권자에게 금방 들통이 난다. 유권자는 말을 그럴싸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하고, 진짜 절박하게 정치를 하며, 진짜 민중 속에서 몸을 부대끼는 진정성 있는 정치를 소비하려 한다.

 

진정성 마케팅의 사례

진정성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는 2000년 로레알에 인수된 미국 화장품 브랜드 키엘(kiehl)이다. 키엘은 “우리 제품 바르면 피부가 열 살은 젊어져요” 식의 허위광고가 아니라 초심과 천연성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승부를 걸었다.

 

이들은 1851년 뉴욕의 작은 약국에서 출발한 자신들의 역사를 강조한다. 화려한 용기 대신 수수한 용기에 화장품을 담는다. 수수한 용기가 천연재료라는 진정성을 표현하기에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용기에는 화장품에 사용된 천연재료의 이름과 기능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런 진정성 마케팅 덕에 키엘은 로레알에 인수된 이후 10년 만에 매출을 5배 이상 늘렸다.

 

영국의 화장품 업체 러쉬(Lush)도 진정성 마케팅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이들은 매장을 아예 식료품 상점처럼 꾸몄다. 소비자가 야채가게에서 싱싱한 야채를 직접 고르듯 매장에서 화장품을 만져보고, 발라보고, 향기를 맡아보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천연재료를 강조하기 위해 비누 안에 말린 살구, 건포도, 팥 알갱이 등을 그대로 넣었다. 비누도 포장단위가 아니라 커다란 비누 덩어리에서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을 잘라서 사도록 했다. 이러면 소비자들은 공산품을 사는 게 아니라 시골 농장에서 나를 위해 막 만든 치즈를 구입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마케팅 덕에 이 회사의 매출도 2002년부터 2011년까지 9배 가까이 성장했다.

 

2012년 LG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현명해진 소비자:‘진정성’에 주목한다』 보고서에는 이런 사례도 있다. 2008년 문을 연 서울의 한 병원은 “의료란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엇이다”라는 기치로 환자 한 명당 최소 30분 이상 진료를 한다는 것이다. 하루 환자 숫자도 최대 20명으로 제한했다.

 

환자는 편안한 소파에 앉고 의사는 그 옆 조그만 의자에 앉아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린이를 위한 곰 인형 청진기도 개발했다. 아이가 곰 인형을 껴안으면 속에 감춰진 무선 청진기로 숨소리를 듣는 것이다. 환자를 진심으로 위한다는 이미지가 물씬 풍겨나는 마케팅 전략이다.

 

연기를 못해도 이렇게 못해서야

길모어와 파인은 “기업은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하는 게 아니다. “소비자들이 진정성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기업이 진정성을 연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진실된 척을 좀 잘 하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어떤가? 필리버스터가 유권자들에게 주는 가치는 단순히 법안 통과를 막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필리버스터의 핵심은 진정성이다. 국회의원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단상 위에 서서 대소변 참아가며 몇 시간을 버티는 그 절박한 모습을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노벨멍청상 후보 자격이 충분한 자유한국당은 “소속 의원들이 네 시간마다 교대해서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발표를 해버렸다. ‘네 시간마다 교대’가 들어가는 순간 이 필리버스터는 망한 거다!

 

유권자는 고통을 참아가며 절절하게 열변을 토하는 진정성을 소비하고 싶은데 이자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네 시간 넘어가면 너무 피곤하니까 우리 그때마다 교대하자고” 이러고 앉아있다. 그걸 보고 누가 감동할 것 같은가?

은수미 의원이 필리버스터 모습. ⓒ양지웅 기자

2010년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무소속 상원의원은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부자 감세안 통과 시도에 반발해 무려 8시간 3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이 장면이 전국에 중계되면서 무명의 샌더스는 일약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왜 미국 민중들이 이 필리버스터에 열광했을까? 나이 일흔의 노장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8시간 37분을 버티면서 사자후를 토하는 그 절박함, 그 진정성에 열광을 하는 거다.

 

2016년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때도 국민들이 가장 큰 감동을 받았던 장면은 11시간 40분 최장시간 기록을 경신한 정청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아니었다. 젊었을 때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은수미 의원이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으로 10시간 18분 동안 열변을 토하는 그 모습에 열광을 한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피곤할 것 같으니까 네 시간마다 교대한단다. 진정성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발 뭘 하려면 경영학 교수한테 5분이라도 자문을 좀 들어라. 그 정도 성의도 없으면서 무슨 제1야당을 한단 말인가? 하긴 그게 될 실력이면 이 처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계속 그렇게 한심했으면 싶기도 하고, 시작도 하기도 전에 펼쳐진 한 편의 코미디를 재미있게 시청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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