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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문화관광] 새로운 골목 ‘로컬’

AKA.DM 2019. 11. 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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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컬’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여겨진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를 지나오면서 경제적 풍요보다는 삶의 질을 더 중요 시 하는 ‘탈물질주의’ 확산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탈물질주의 라이프 스타일은 ‘워라밸’, ‘소확행’을 강조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은 30분 거리 내의 도보생활권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보다는 문화를 소비하며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지역’ 개념과는 또 다른 의미로 ‘로컬’이라는 용어가 ‘지역’이라는 개념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또한, 도시 발전과 확장이 빚어낸 도심의 공동화 문제 해결을 위한 ‘도시재생’ 논의가 심화된 가운데 지방소멸의 위기감이 대두되자 자연스럽게 ‘로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컬’의 의미 속에는 로컬을 주도하는 로컬크리에이터에 의해 창출된 라이프 스타일 생태계인 ‘상권’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다양한 시선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창업트렌드나 문화관광 콘텐츠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과는 상관없이 ‘로컬’의 개념은 존재해왔으며, ‘로컬 트렌드’를 주도하며 부각되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 로컬크리에이터 개념잡기

‘로컬 크리에이터’를 논하기에 앞서 관련 연구를 살펴보자면, 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해 온 인물은 <골목길 자본론>으로 잘 알려진 모종린 교수다. 그는 도시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연구하는 가운데 골목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골목길 자본론>은 도시의 작은 단위인 골목을 활성화시키는 소상공인을 부각시키면서 도시재생과 도시의 리브랜딩, 소상공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골목길 자본론> 저술 이후 모종린 교수의 시선은 골목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플레이어들에게 좀 더 집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로컬크리에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모 교수에 따르면 “‘로컬크리에이터’란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을 말한다. 이 정의는 지금까지 논의된 ‘로컬크리에이터’ 담론 중에서도 그들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도 종합적이면서, 앞으로도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로컬크리에이터의 유형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로컬크리에이터’를 겪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생산한 ‘로컬 콘텐츠’의 일부분만을 대하게 된다면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하게 될 수 있다. 앞선 정의의 내용 속에서도 ‘지역’과 ‘소상공인’이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로컬크리에이터’를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다. 특히 ‘창의적 소상공인’이라고만 하면 공방 비즈니스를 하는 소상공인과 혼동될 수 있다. 조금 달리 말해 본다면 “골목상권 등 지역 시장에서 지역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이 ‘로컬크리에이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 로컬크리에이터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는 지역-‘로컬’

그렇다면 이쯤에서 ‘지역’, ‘골목’ 등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데 굳이 ‘로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이는 수도권과 대비된 ‘지방’, 중심지를 벗어난 ‘변두리’로 인식하는 ‘지역’이라는 일상적인 개념을 뛰어넘기 위해서다.

 

‘로컬’ 개념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가수 윤수일이 부른 ‘제2의 고향’이라는 노래다. 80년대 노래지만 국민애창곡으로 불릴 만큼 사랑받은 곡이라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래가 애창되던 시기는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정점에 달했던 때였다. 고향이던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내며, ‘제2의 고향’이란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처럼 정을 붙여야 하는 곳이거나 고향대신 고향처럼 정든 곳을 설명하는 매우 적절한 단어로 여겨졌다.

 

그런데 노래 속 가사를 곱씹어보면 실은 그 내용 속에 ‘로컬’의 개념이 들어있다. 우선 1절 가사를 유심히 읽어보기 바란다.

 

사방을 몇 바퀴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는 건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숲
정둘 곳 찾아봐도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거리를 하루종일 아무리 걸어봐도 보이는 건 한없이 밀리는 자동차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띵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가사를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일 때는 ‘콘크리트 빌딩숲’, ‘밀리는 자동차’와 같이 농촌과 다른 도시의 환경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경쾌하고 쾌활한 곡의 분위기는 농촌생활과 다른 도시생활을 즐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래 속 화자(話者)는 변화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뽐내고 있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한 자신과 농촌생활에 머물러있을 누군가와 비교해서 보여준다.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숲과 한없이 밀리는 자동차가 싫은데,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맞춰 살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도시형 라이프 스타일은 그런 거라 자랑하면서 그런 자기만의 공간을 ‘제2의 고향’이라고 재해석하고 있다.

 

‘로컬’의 개념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문화적, 정서적 코드와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문화 지향적 생태계를 이룰 때 ‘지역’이 아닌 ‘로컬’이라 부르며, 이를 주도하는 사람을 ‘로컬크리에이터’라 부르는 것이다.

 

# 라이프 스타일에서 출발한 로컬 콘텐츠에 주목하라

이미지 출처 : 네이버 플레이스(위크엔더스)

실제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이 어떻게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최근 강릉에 가면 ‘위크엔더스’라는 리트릿(retreat) 호스텔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서핑과 요가 등 리트릿을 즐기고 싶은 이들로 연일 가득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접객능력이 매우 우수한 숙박업소로만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위크엔더스’는 숙박업소가 아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플레이스(위크엔더스)

원래 ‘위크엔더스’는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좋아 아예 강릉으로 이주한 로컬크리에이터가 여인숙을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개조한 공간에서 출발했다. 이들을 쫓아 서핑과 요가 등 리트릿을 통한 강릉의 새로운 로컬 콘텐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박업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플레이스(위크엔더스)  

여기서 되짚어보면 강조점은 숙박업이나 서핑에 찍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특별함을 제공한다. 해변에서 즐기는 서핑과 요가는 물론, 그들이 운영하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모임과 파티 등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쉼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숙박업소가 드물기 때문에 프로그램 운영이 성공창업 포인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동일한 지역에서 동일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성공이 복제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플레이스(위크엔더스)

실제로 ‘위크엔더스’를 찾는 방문객들을 관찰하면 ‘위크엔더스’가 판매한 것은 강릉해변에서 즐길 수 있는 서핑 프로그램과 독특한 분위기의 객실로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로컬’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강릉해변에서의 서핑’은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 중 한 가지 행위일 뿐이며, 상품패키지로 따진다면 작은 샘플에 해당할 뿐인 것이다.

 

# 문화적 도시재생과 로컬크리에이터

여기서 잠시 필자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 웹 기획과 에이전시 업무를 하다 해외경험을 쌓기 위해 일을 접기로 결심했다. 그 후 6년간 이스라엘에서 유학하며 유럽을 자주 드나들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과 다른 도시를 많이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인 특성상 도시와 도시가 이어지지 않는다. 황폐한 환경뿐인 광야와 광야 사이에 도시가 형성되다 보니 도시들이 띄엄띄엄 떨어지며 각자 자급자족 구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도시의 한 부분인 동네 또한 도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태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네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동네 친구로 지내다보니 식사를 하러 프랜차이즈 점포에 가더라도 점원과 손님이 서로 안부부터 나누고, “나, 너 뭐 먹는지 알아. 이거 싫어하지?”하며 주문보다 먼저 챙겨준다. 헤어샵에 가면 “너 요즘 안보이더라? 어떻게 지내?”하는 이야기가 먼저 오간다. 유럽을 가도 대도시를 제외하곤 이런 동네 단위의 생활을 일상적으로 영위하고 있었다.

이런 점은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의 전통적 로컬문화처럼 살갑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도시화 속도가 빠른 한국은 도시의 확장과 건축에 따라 주민들의 이주가 빈번해지며 원래 강하게 형성되어 있던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반성으로 필자는 공동체성을 지닌 공간창업을 꿈꾸게 되었다.

코워킹 스페이스-아이디어 팩토리 이미지 출처 : 아이디어 팩토리 블로그 (https://ideafactory1.blog.me/221218809135)
소풍-쉐어하우스 이미지 출처 : 소풍쉐어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3siot.org/)

함께 일할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함께 지낼 수 있는 쉐어하우스, 공용거실과 서재역할을 겸할 수 있는 독립서점을 연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형태를 합친 사례가 알려진 게 없어 사례 발굴을 위해 발로 뛰다보니, 로컬크리에이터 분야의 네트워커 소리를 듣게 되었고 크리에이티브 컴퍼니(로컬콘텐츠를 기획하고 로컬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기업)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필자의 생각은 문화적 도시재생의 방향성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필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로컬크리에이터의 비즈니스 지향점 또한 문화적 도시재생과 흡사한 면이 많다. 라이프 스타일로 재해석된 ‘로컬’을 기반으로 하지만, ‘로컬’ 또한 지역의 자산과 유휴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며 지역과 밀접하게 연계하지 않고는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 지역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로컬크리에이터

서피비치 이미지 출처 : 서피비치 홈페이지 (http://www.surfyy.com/)

강원도 양양에 있는 ‘서피비치’는 40년 만에 개방된 철책선 지역의 해변을 이국적인 프라이빗 비치로 조성하며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1km에 달하는 해변을 서핑전용 해변과 스위밍존, 빈백존, 해먹존, 칠링존 등 다양하게 꾸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지역의 자산인 로컬콘텐츠와 유휴공간을 백분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29/2016082901333.html)

이곳에 철책이 둘러쳐진 것은 70년대의 무장공비 사건 때문이었다. 분단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는 긴장과 갈등의 공간으로 여겨졌겠지만, ‘서피비치’는 철책을 경계선, 국경 밖 공간으로 재해석해 이곳을 한국이 아닌 외국에 온 것처럼 연출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던 외국의 해변이 양양에 펼쳐졌고, 이곳의 ‘로컬’은 양양해변이 아닌 외국 어느 휴양지의 프라이빗 비치로 리브랜딩되며 관광지로 시선을 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지역적 의미와 전통이 퇴색하는 것일까? 철책선 안쪽 멈춰버린 시간을 상징하던 공간이 새로운 공간으로 재창조되었지만, 공간의 재창조가 주는 대비는 역설적으로 역사적 아픔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철책에 막혀 왕래가 끊어지다보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만, 관광명소가 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이어지다보면 모두가 즐기는 이곳이 무장공비 사건의 무대였다는 것을 언제든 일깨우고 함께 기억할 수 있다.

 

이는 로컬크리에이터가 문화지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로컬크리에이터는 도시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인 비용을 감소시키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로컬크리에이터를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한 파트너로 보는 시각이 확산됨에 따라 정부차원의 지원책과 육성방안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뭔가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보자. “당신의 골목, 당신의 로컬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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